사직서 내야 급여 준다는 회사,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5인 미만 스타트업에서 퇴사하며 떼일 뻔한 돈을 되찾은 기록,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1편에서는 왜 제 경우가 '해고'에 해당하는지를 정리했습니다.
이번 편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고용주와 실제로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입니다.
애초에 호락호락한 사람이었다면 당일 해고 통보 같은 걸 하지 않았겠죠. 약속한 돈을 안 준다고 말을 바꾸지도 않았을 거고요.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앞으로도 순순히 물러설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한 번 요구하면 미안하다고 하면서 입금해 줄 거라는 기대는 접는 게 좋습니다.
이 글은 그 기대를 접은 뒤에 제가 실제로 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단계. 싸우지 않고, 증거를 모으며 기다렸습니다
통보받은 그날 저는 그냥 나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따지지 않았어요.
당시엔 그냥 정이 떨어져서 나온 거였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최선이었습니다. 감정적으로 부딪히면 오가는 말이 전부 기록으로 남고, 그중 일부는 반드시 제게 불리하게 쓰입니다.
집에 와서 한 일은 딱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 대화 기록을 전부 백업했습니다.
대표&동료들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 메일을 날짜순으로 저장했습니다. 특히 이 세 가지가 담긴 대화를 우선순위로 뒀습니다.
| 제가 퇴사 예정일을 말한 증거(카톡) | 날짜를 특정했다는 사실 |
| 당일 나가라고 통보받은 대화(동료들과의 카톡) | 왜 정해진 날짜가 아니라 오늘 떠나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 |
두 번째가 핵심입니다. 1편에서 설명했듯이, 제가 정한 퇴사일보다 회사가 먼저 끊었다는 게 이 사건 전체를 지탱하는 뼈대니까요.
둘.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의외로 중요했습니다. 먼저 연락해서 "돈 주세요"라고 조르지 않았어요.
이유가 있습니다. 회사에는 반드시 아쉬운 게 생깁니다. 사람을 그렇게 내보내 놓고 서류 정리가 안 된 상태로 넘어갈 수는 없거든요. 조급한 쪽은 제가 아니라 회사였습니다.
2단계. 예상대로, 회사가 먼저 연락했습니다
며칠 지나서 연락이 왔습니다. 용건은 사직서였습니다. 제 서명이 들어간 사직서가 한 장도 없었으니까요.
메일에 이렇게 써 있더군요.
"사직서 제출해 주시면 급여 처리해 드릴게요."
말은 부드러워 보였지만 내용은 조건부 거래였습니다. 사직서를 내야 급여를 주겠다는 뜻이죠.
여기서 잠깐 멈추고 이 제안의 정체를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제안이 왜 어림없는가
♠ 첫째, 급여는 사직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미 일한 만큼의 급여는 서류를 내든 안 내든 지급되어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14일 이내에 임금과 그 밖의 모든 금품을 지급해야 합니다. 사직서 제출은 이 의무의 조건이 아닙니다.
즉 "사직서 내면 급여 주겠다"는 건 이미 줘야 할 걸 협상 카드로 쓰는 것입니다.
♠ 둘째, 사직서를 내는 순간 해고예고수당이 사라집니다.
이게 진짜 함정입니다.
1편에서 정리했듯이, 제가 받을 수 있었던 해고예고수당의 근거는 "회사가 합의된 퇴사일 전에 일방적으로 끊었다 = 해고"라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직서를 쓰면 어떻게 될까요? 그 종이에는 회사가 정한 날짜가 퇴사일로 박힙니다. 제 서명과 함께요.
그 순간 사건의 성격이 완전히 바뀝니다.
| 근로관계 종료의 성격 | 회사의 일방적 종료 = 해고 | 근로자의 자진 퇴사 |
| 해고예고수당 | 청구 가능 | 청구 근거 소멸 |
| 회사가 가진 증거 | 없음 | 본인 서명이 들어간 서류 |
회사가 사직서를 원한 진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단순한 서류 정리가 아니었어요.
당일 해고를 자진 퇴사로 바꿔치기할 마지막 조각이 필요했던 겁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사직서를 안 썼으니 사직 의사 자체가 무효"라는 말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데 그 내용은 조금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두 사직도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제가 유리했던 건 사직서가 무효라서보다도, 회사가 자진 퇴사를 주장할 서면 근거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단계. 제가 보낸 답장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감정을 빼고, 사실과 요구만 남겼습니다.

이렇게 쓴 이유
감정을 넣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이 메시지는 나중에 그대로 증거로 제출됩니다. 담담할수록 강해 보입니다.
날짜를 두 번 명시했습니다. 제가 말한 퇴사일과 회사가 통보한 날. 이 두 날짜의 간격이 사건의 전부입니다.
다음 단계를 예고했습니다. 협박이 아니라 통보입니다. 근로자에게는 법 위반 사실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권리가 법으로 보장돼 있습니다.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미리 알린 것뿐입니다.
4단계. 역시나, 회유와 협박이 왔습니다
이후 몇 번 왔다갔다 한 메일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받으면 노동청 신고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입금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에이, 설마 진짜 노동청 가겠어?" 이런 생각이었겠지요.
대신 다른 게 왔습니다.
먼저 지인을 통한 회유가 들어왔습니다.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이게 가장 마음이 불편한 부분이었어요. 그분과의 관계도 있으니까요.
그 다음은 간접적인 협박이었습니다.
업무 관련해서 책임을 묻겠다는 이야기, 이직할 때 업계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이야기. 구체적인 내용은 개인정보 문제가 있어 여기 옮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정말 얼탱이가 없는 수준이었다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이건 오히려 좋은 겁니다
이런 문자나 메일을 받으면 겁먹지 말고 속으로 감사 인사를 하세요. 전부 증거가 됩니다.
이유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근로자에게는 신고할 권리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104조는 사업장에서 법 위반 사실이 있으면 근로자가 고용노동부장관이나 근로감독관에게 통보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그 통보를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합니다.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입니다.
다만 이 조항은 "신고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여야 적용되고, 다른 실질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처벌된다고 단정할 순 없어요. 하지만 회사가 이걸 알고 그러는 경우는 드뭅니다.
둘째, 상황에 따라 별도의 법적 대응도 가능합니다.
해악을 고지해 공포심을 일으키는 정도에 이르면 형법상 협박죄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발언의 구체성과 정도에 따라 판단이 갈리므로 무조건 성립한다고 볼 순 없지만,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다는 건 분명합니다.
셋째, 이게 실질적으로 가장 큽니다.
협박성 연락은 근로감독관에게 회사가 어떤 태도인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조사 과정에서 회사는 대체로 "오해가 있었다", "원만히 해결하려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근로자가 협박 문자를 내밀면 그 주장이 통째로 무너져요.
정황 증거로서의 위력이 상당합니다.
그러니 이런 연락이 오면 캡처하고 저장하세요. 대응하지 마시고요. 답장할수록 감정적인 말이 섞이고, 그건 상대에게 줄 카드를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5단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정을 넣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내린 판단은 하나였습니다. 더 기다려봐야 달라질 게 없다.
회유와 협박이 왔다는 건 회사가 돈을 줄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대화로 풀 수 있는 단계는 끝난 거예요. 오히려 시간을 끌수록 상대는 "버티면 되는구나"라고 학습합니다.
제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앞서 답장에서 기한을 못 박고 진정을 예고했는데, 기한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이 없으면 그 예고는 그냥 빈말이 됩니다. 다음번 협상에서 아무 힘도 없어져요.
그래서! 예고한 기한이 지난 직후 바로 접수했습니다.
접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 남짓이었습니다. 집에서, 노트북으로요. 생각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그 과정은 3편에서 화면 캡처와 함께 전부 정리하겠습니다.
정리 —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와 대화하는 원칙
- 그 자리에서 싸우지 마세요. 감정적인 대화는 전부 상대의 카드가 됩니다
- 먼저 조르지 마세요. 서류가 없는 쪽은 회사입니다. 아쉬운 쪽이 먼저 움직입니다
- "사직서 내면 급여 준다"는 제안은 거절하세요. 급여는 원래 줘야 할 돈이고, 사직서는 해고를 자진 퇴사로 바꾸는 서류입니다
- 답장에는 날짜, 금액, 기한을 넣고 감정은 빼세요. 그 메시지가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 회유와 협박은 겁먹을 게 아니라 저장할 자료입니다. 조사에서 회사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 예고한 기한이 지나면 바로 실행하세요. 실행하지 않는 예고는 다음번을 위한 자충수가 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이긴 이유는 특별한 법 지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상대가 예상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쪽은 제가 사직서를 쓰고, 회유에 흔들리고, 협박에 겁먹고, 결국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시나리오 중 하나도 맞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던 거죠.
다음 편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시리즈 안내
- 1편 5인 미만 사업장? 해고예고수당 적용됩니다
- 2편 (현재 글) 호락호락하지 않은 고용주 어떻게 대응/커뮤니케이션 했나
- 3편 고용노동부 진정 접수, 집에서 20분이면 끝납니다
- 4편 노동청 출석조사를 앞두고 — 접수부터 입금까지
- 5편 스타트업 퇴사하며 떼일 뻔한 돈 되찾은 기록
이 글은 제 개인적인 경험과 그 과정에서 찾아본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며, 개별 사안은 근로 형태·재직 기간·계약 내용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인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면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국번 없이 1350)나 가까운 지방고용노동관서에 문의하시는 걸 권합니다. 상담은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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